捲土重來 권토중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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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토중래(捲土重來) 관련 설명 == | == 권토중래(捲土重來) 관련 설명 == | ||
한 번 패한 자가 힘을 돌이켜 전력을 다함 | 한 번 패한 자가 힘을 돌이켜 전력을 다함 | ||
초와 한의 상쟁은 역사상 길이 남는 감명 깊은 이야기이다. | |||
한나라 유방과 천하를 걸고 싸우던 항우는 불과 31세라는 짧은 생애에 파란과 기복도 많았고 | 한나라 유방과 천하를 걸고 싸우던 항우는 불과 31세라는 짧은 생애에 파란과 기복도 많았고 |
2015년 12월 23일 (수) 13:11 기준 최신판
捲土重來 권토중래[편집]
捲 거둘 권 土 흙 토 重 무거울 중 來 올 래
권토중래(捲土重來) 관련 설명[편집]
한 번 패한 자가 힘을 돌이켜 전력을 다함
초와 한의 상쟁은 역사상 길이 남는 감명 깊은 이야기이다.
한나라 유방과 천하를 걸고 싸우던 항우는 불과 31세라는 짧은 생애에 파란과 기복도 많았고
아울러 너무나 비극적인 최후를 기록했기 때문에 문학상의 주인공으로도 여러모로 취급되고 있다.
그의 영웅 호걸다운 활약상과 덧없는 말로에 우리도 인간적인 비애와 연민을 금할 수가 없거니와 중국 사람들은 옛부터
그에게 적지 않은 사랑을 표시해 왔다.
물론 항우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문학상에서 보더라도 그에 대한 인물형은 매우 다종 다양하다.
항우는 신장이 팔 척이나 되고 힘이 장사며 재기가 출중하여 오중 일대의 자제들 모두 그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운 존재로 여겼다.
항우가 처음 통솔한 부대는 그의 숙부인 항량과 오중 일대에서 조직한 8천여명에 불과한 사람들이었다.
이 팔천여 사람들 가운데 일부분은 그의 친한 친구들이어서 싸움에 용맹선전했다.
항우는 바로 이 8천여 정예 군병을 간부로 하여 차차 강대한 웅사(웅장한 부대)로 만들었다.
그 뒤 항우가 승전에 승전을 거듭하다가 마지막 회하 싸움에서 적병에 겹겹이 포위된 곤경 속에서 포위망을 뚫고 남쪽인
오강으로 달아나기까지 부대 장병들을 모두 잃고 오직 삼십 팔 명의 예하 군사만이 남았다.이 때 오강의 포도대장인 정장이
배를 저어 강변에 대고는 항왕을 향하여 손짓하며 말했다.
“오강 하류 지방이 비록 작지만 그래도 천리나 되는 땅에 인구도 수십만이 살고 있으니 그 곳에서 왕으로 자처할 수 있으니 속히 제 배를 타십시오.
시간을 지체하여 한군이 쫓아오게 되면 강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항우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늘이 나를 보살피지 않고 멸하고자 하는데 내가 강은 건너서 무엇하요?
당초 나와 강동 자제 팔천여 명이 서쪽으로 강을 건너 왔는데 지금은 아무도 돌아온 사람이 없지 않소.
설사 부모형제들이 나를 가엽게 여겨 다들 나를 왕으로 추대한다 하더라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소?
내 이 부끄러움을 어이 다 형용할 수 있겠소?”
여기까지 말하던 항우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다시 이어 말했다.
“내가 보니 당신도 벼슬하는 사람 같구료, 내가 타고 있는 이 말은 오추라고 부르는데
나와 생사 고락을 같이 하면서 지낸지 오년 동안 천하무적격으로 하루 천리를 달리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었는데 내 어찌 죽여 버릴 수가 있겠소?
내 이 말을 당신에게 하사하리라.”
항우는 부하들을 모두 말에서 내리도록 명하고는 걸어서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방의 군사가 바로 뒤를 쫓아와 일대 백병전이 벌어졌다.
이 때 항우는 여전히 위풍을 떨치면서 적병 수백을 참살하고 자신도 몸에 십여 곳에 상처를 입었다.
그 때 항왕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사마 여마동을 보고는 소리쳤다.
“저 사람은 내 옛친구가 아닌가?”여마동이 가까이 달려와 말을 멈추고는 왕예에게 얼굴을 옆으로 돌려 가리켜 말했다.
“이 자가 항왕이다!”그 때 항왕은 소리쳐 외쳤다.
“한왕이 현상금 천 냥과 만호의 토지로 내 머리를 산다고 들었는데 내 이렇게 옛 친구에게 보답하겠다.”하고는 스스로 목을 베어 자살하였다.
그로부터 천 년의 세월이 흘러간 당대에 이르러 두보의 다음 가는 천재적인 두목이 오강을 굽어 보이는 역정에 기대어 천 년 전 항우의 장렬한 최루를 그려 보았던 것이다.
항우에 대하여 항상 호감을 갖고 있었던 두목은 불과 31살의 젊은 나이로 영웅의 생애를 마친 그 젊음을 아깝게 여겼다.
사실 항우는 단순하고 참을성 없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미인과의 마지막 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적인 일면에는 항상 번쩍이는 매력이 있었다.
두목은 이모저모 생각해 보았다.
“강동으로 돌아가면 당장 부모형제를 대할 면목이 없다는 그 한 가지 수치에만 치우쳐서 그의 천성대로 자결을 했구나!
그 한 때의 수치만 참았다면 강동에는 그래도 그를 숭배하고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반드시 만회하고 재기할 가능성이 있었을텐데·…….”
항우를 애석하게 여기는 시인으로서는 당연히 끌어올랐을 인정이리라.
그리하여 오강 정자에 한수의 시를 읊어 썼다.
“勝敗兵家事不期 包羞忍恥是男兒 江東子弟多才俊 不可知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었으니 수치를 안고 치욕을 참는 남아이었건만 강동에는 따르는 인재도 많았으나 권토중래는 모르는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