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備無患 유비무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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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무환(有備無患) 관련 설명 == | == 유비무환(有備無患) 관련 설명 == | ||
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음 | 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음 | ||
춘추시대 진도공은 영명하고 유능한 국왕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하인 사마위강도 엄정공명하게 법을 집행하는 관리였는데 한 번은 진도공의 동생 양간이 | |||
곡량에서 군법을 어기고 큰 소리를 피웠다. | |||
위강은 즉시 양간의 마차 모는 마부를 붙잡아다 참수형을 결행하여 군중에게 본보기로 시위를 하였다.양간이 도공에게 위강이 안하무인이며 | |||
왕실을 모욕하였다고 통곡을 하며 하소연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도공은 대노하여 위강이 무례하기 짝이 없다고 호통을 치면서 말했다. | |||
“나의 동생이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니 이 부끄러움을 어디에 비하겠는가? 위강이란 놈을 잡아 죽여야 내 이 직성이 다 풀리겠으니 빨리 | |||
그 놈을 잡아 오렷다.”이 때 옆에 있던 양설적이 도공에게 아뢰었다.“위강은 충신으로서 절대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 |||
”위강이 이러한 사실을 듣고는 궁 밖으로 나아가 도공에게 상소문을 전해 올리고 스스로 옆에 찬 칼을 뽑아들고 도공이 있는 궁문을 향해 자결을 할 참이었다. | |||
그러나 궁문에서 호위를 하고 있던 호위병들이 이 상황을 보고 있다가 정세가 위급함을 직감하고 곧장 달려들어 위강의 자결을 극구 만류하였다. | |||
도공이 위강의 상소문을 읽어 보고는 마침내 터무니 없는 양간의 보고였음을 알았고 위강의 공명정대함을 알아차리고는 신발도 찾아 신지 못하고 | |||
황급히 궁 밖으로 뛰어 나가 위강을 붙들고 위로하였다.“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오. 그대에게는 아무런 과실이 없었소. | |||
”이 때부터 도공은 더욱 더 위강을 신임하게 되었고 위강에게 새 군사를 양성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겼다. 이 때 북방의 오랑캐 융족 무종국에서 | |||
진나라에 많은 예물을 갖다 바치면서 융족과 화목하게 지내줄 것을 부탁하여 왔다. 그러자 도공이 강경한 태도로 건의를 거절하였다. | |||
그리하여 북방 12개국에서는 또 연합군을 파견하여 정나라를 쳤다.정나라는 진퇴유곡인 경우라 당황을 면치 못하고는 또 다시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요구했다. 진나라는 마지못해 이에 응하게 되자 싸움이 곧 종식되었다.정나라는 진나라에 감사하는 뜻으로 많은 값진 보물과 가희(歌姬)를 선물로 진나라에 바쳤다. 도공은 가희들을 위강에게 보내어 싸움으로 인한 고달픔을 일시나마 달래어 주려고 했다. 그러나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도공에게 간하였다.“편안히 지낼 때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는 것입니다. | “융족은 추호도 인정과 의리가 없고 오직 욕심만 부리는 족속들로 아주 정벌하여 없애버림만 못할 것이다.”위강이 간하여 말했다. | ||
“융족이 스스로 화해를 요구해 온 것은 진나라로서는 복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찌 이 일을 달게 받아들이시지 않으시고 멸하고자 하십니까? | |||
”도공이 위강의 충간을 듣고는 수긍이 가는 지라 그의 말을 따라 이행하게 되니 외환이 그치고 나랏일에만 전심전력할 수가 있었다. | |||
몇 년이 흘러 진나라는 위강의 보좌 아래 선정을 베풀게 되어 나라 형편은 날로 흥성해 갔다. 어느 해 정나라가 출병하여 송나라를 침략하자 | |||
송나라에서는 나라의 위급함을 진나라에 알리고 구원을 청했다. 진도공은 즉각 노․위․제․조나라 등 11개국에 이 사실을 알려 연합군을 편성하여 | |||
위강의 통솔하에 정나라 도성을 둘러싸고는 송나라를 침략하는 야욕을 버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 |||
그러자 정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두려움을 갖고는 송․진․제 등 12개국과 불가침의 화해 조약을 맺고 말았다. 초나라는 정나라가 북방으로 | |||
기울어진 것을 보고는 매우 못 마땅히 여겨 군대를 풀어 정나라를 침공했다. | |||
초나라 군대가 강대함을 안 정나라는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초나라와도 맹약을 체결했다.정나라가 이와 같이 조삼모사격으로 | |||
진나라에 기댔다가 초나라에 아부하는 기회주의자란 낙인을 찍은 북방의 12개국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
그리하여 북방 12개국에서는 또 연합군을 파견하여 정나라를 쳤다.정나라는 진퇴유곡인 경우라 당황을 면치 못하고는 | |||
또 다시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요구했다. 진나라는 마지못해 이에 응하게 되자 싸움이 곧 종식되었다. | |||
정나라는 진나라에 감사하는 뜻으로 많은 값진 보물과 가희(歌姬)를 선물로 진나라에 바쳤다. | |||
도공은 가희들을 위강에게 보내어 싸움으로 인한 고달픔을 일시나마 달래어 주려고 했다. | |||
그러나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도공에게 간하였다. | |||
“편안히 지낼 때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는 것입니다.” | |||
도공이 이 말을 듣자 그의 넓은 지략과 이치에 탄복하여 그 가희들을 모두 정나라로 돌려 보냈다. | |||
이와 같이 도공은 위강의 충성 어린 보좌 아래 그 진나라의 패업을 이룩하였다. | |||
[[분류:한자]][[분류:고사성어]] | [[분류:한자]][[분류:고사성어]] |
2015년 9월 7일 (월) 18:09 기준 최신판
有備無患 유비무환[편집]
有 있을 유 備 갖출 비 無 없을 무 患 근심 환
유비무환(有備無患) 관련 설명[편집]
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음
춘추시대 진도공은 영명하고 유능한 국왕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하인 사마위강도 엄정공명하게 법을 집행하는 관리였는데 한 번은 진도공의 동생 양간이
곡량에서 군법을 어기고 큰 소리를 피웠다.
위강은 즉시 양간의 마차 모는 마부를 붙잡아다 참수형을 결행하여 군중에게 본보기로 시위를 하였다.양간이 도공에게 위강이 안하무인이며
왕실을 모욕하였다고 통곡을 하며 하소연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도공은 대노하여 위강이 무례하기 짝이 없다고 호통을 치면서 말했다. “나의 동생이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니 이 부끄러움을 어디에 비하겠는가? 위강이란 놈을 잡아 죽여야 내 이 직성이 다 풀리겠으니 빨리 그 놈을 잡아 오렷다.”이 때 옆에 있던 양설적이 도공에게 아뢰었다.“위강은 충신으로서 절대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강이 이러한 사실을 듣고는 궁 밖으로 나아가 도공에게 상소문을 전해 올리고 스스로 옆에 찬 칼을 뽑아들고 도공이 있는 궁문을 향해 자결을 할 참이었다. 그러나 궁문에서 호위를 하고 있던 호위병들이 이 상황을 보고 있다가 정세가 위급함을 직감하고 곧장 달려들어 위강의 자결을 극구 만류하였다.
도공이 위강의 상소문을 읽어 보고는 마침내 터무니 없는 양간의 보고였음을 알았고 위강의 공명정대함을 알아차리고는 신발도 찾아 신지 못하고
황급히 궁 밖으로 뛰어 나가 위강을 붙들고 위로하였다.“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오. 그대에게는 아무런 과실이 없었소. ”이 때부터 도공은 더욱 더 위강을 신임하게 되었고 위강에게 새 군사를 양성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겼다. 이 때 북방의 오랑캐 융족 무종국에서 진나라에 많은 예물을 갖다 바치면서 융족과 화목하게 지내줄 것을 부탁하여 왔다. 그러자 도공이 강경한 태도로 건의를 거절하였다.
“융족은 추호도 인정과 의리가 없고 오직 욕심만 부리는 족속들로 아주 정벌하여 없애버림만 못할 것이다.”위강이 간하여 말했다.
“융족이 스스로 화해를 요구해 온 것은 진나라로서는 복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찌 이 일을 달게 받아들이시지 않으시고 멸하고자 하십니까? ”도공이 위강의 충간을 듣고는 수긍이 가는 지라 그의 말을 따라 이행하게 되니 외환이 그치고 나랏일에만 전심전력할 수가 있었다.
몇 년이 흘러 진나라는 위강의 보좌 아래 선정을 베풀게 되어 나라 형편은 날로 흥성해 갔다. 어느 해 정나라가 출병하여 송나라를 침략하자
송나라에서는 나라의 위급함을 진나라에 알리고 구원을 청했다. 진도공은 즉각 노․위․제․조나라 등 11개국에 이 사실을 알려 연합군을 편성하여 위강의 통솔하에 정나라 도성을 둘러싸고는 송나라를 침략하는 야욕을 버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정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두려움을 갖고는 송․진․제 등 12개국과 불가침의 화해 조약을 맺고 말았다. 초나라는 정나라가 북방으로 기울어진 것을 보고는 매우 못 마땅히 여겨 군대를 풀어 정나라를 침공했다. 초나라 군대가 강대함을 안 정나라는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초나라와도 맹약을 체결했다.정나라가 이와 같이 조삼모사격으로 진나라에 기댔다가 초나라에 아부하는 기회주의자란 낙인을 찍은 북방의 12개국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북방 12개국에서는 또 연합군을 파견하여 정나라를 쳤다.정나라는 진퇴유곡인 경우라 당황을 면치 못하고는
또 다시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요구했다. 진나라는 마지못해 이에 응하게 되자 싸움이 곧 종식되었다. 정나라는 진나라에 감사하는 뜻으로 많은 값진 보물과 가희(歌姬)를 선물로 진나라에 바쳤다. 도공은 가희들을 위강에게 보내어 싸움으로 인한 고달픔을 일시나마 달래어 주려고 했다. 그러나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도공에게 간하였다. “편안히 지낼 때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는 것입니다.”
도공이 이 말을 듣자 그의 넓은 지략과 이치에 탄복하여 그 가희들을 모두 정나라로 돌려 보냈다. 이와 같이 도공은 위강의 충성 어린 보좌 아래 그 진나라의 패업을 이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