首鼠兩端 수서양단
首鼠兩端 수서양단[편집]
首 머리 수 鼠 쥐 서 兩 두 양 端 끝 단
수서양단(首鼠兩端) 관련 설명[편집]
어떤 일을 할 때 쭈빗거리고 주저하여 쾌히 실행하지 못함을 뜻함
전한(前漢) 제 4대 경제때부터 제 5대 무제에 걸쳐, 서로 호적수(好敵手)가 되어 티격태격 싸움을 거듭하던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의 두 사람이 있었다.
위기후는 경제의 제 3대 문제의 5촌이고 무안후는 황후 동생, 다 같이 한실로서는 관계가 깊은 사이였다.전분이 어렸을 때, 두영은 이미 대장군이 되어 있었으나
경제의 만년에는 전분도 상당히 출세했다. 경제가 죽은 후부터는 반대로 무안후가 재상이 되고, 위기후는 점차 사양화(斜陽化) 되어 갔다.
이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견원(犬猿)의 사이가 된 것은 위기후의 친우로서 강직한 용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관부가 하찮은 사고를 일으킨 데서이지만
이 사고를 둘러싸고 두 사람 다 자기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제(帝)에게로 나아가 입이 모자랄 정도로 상대를 헐뜯었다.
두 사람의 호소를 받은 임금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신하들에게 누가 옳은가를 물었다. 관리의 죄를 규명하는 소임의 장인 어사대부(御使大夫) 한안국은
“양쪽 말에 다 일리가 있어 판단이 곤란합니다. 따라서 폐하의 재단(裁斷)을 바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때 동석하고 있던 내리(벼슬 이름)인 정(鄭)은
처음에 위기후의 편을 들었는데 형세가 불리한 것을 보고 뚜렷한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帝)는 내리를 나무랐다.
“너는 평소 두 사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비판하고 있으면서 중요한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야 어찌 내리의 소임을 다 할 수 있겠는가? 못된 놈,
너같은 놈은 참죄에 처하는 것이 천하를 위하는 길이다.” 정은 황공하여 오직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무안후는 이런 다툼으로 제(帝)의 마음을 괴롭힌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퇴출하자 어사대부를 불러 야단을 쳤다.“왜 너는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나갈까 말까 하며 망설이고 있는 쥐처럼, 이 사건에 뚜렷한 흑백을 가리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느냐(어찌 을 하는가)? 신통치 못한 인간이로구나. 이비곡직(理非曲直)이 뚜렷한데”야단을 맞은 어사, 죄송해서 잠시 생각하고 있다가 말했다.
“명안(名案)이 있습니다. 당신이 우선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씀하십시요.
「위기후를 나쁘게 말하고, 고집을 세워 폐하께 심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삼가 책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부질없는 제가 재상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과분한 일입니다. 진심으로 불명(不明)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처분만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그렇게 하면 제(帝)는 틀림없이 당신의 겸양의 덕을 보고 결코 당신을 파면시키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위기후는 내심 부끄러움을 못이겨 자살을 하겠지요.
두 분이 서로 욕하고 험담하는 것은 어른답지 못한 짓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무안후는 과연 그럴 듯 싶어 그대로 했다.
어사가 말한대로 무안후는 파면은 커녕 도리어 제(帝)의 신임이 두터워졌다.한편 위기후는 이제까지의 일을 조사당하고, 우선 문제의 중심이었던 관부장군의 일족이 전부 처형되고, 곧이어 위기후도 똑같은 꼴을 당해 이 쌍움은 일단 무안후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 싸움에는 후일담이 있다. 그 후 곧 무안후는 병이 나서 비몽사몽 간에“용서해다구. 내가 나뻤다.”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무당에게 보인 즉 이 벼은 앞서 원한을 품고 죽은 위기후와 관부의 원혼이 붙어 무안후를 죽이려고 하는 짓이라고 했다. 놀라서 온갖 기도를 드렸으나
두 사람의 원혼은 줄기차게 붙어 떨어지질 않아 무안후는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면서 1주일 후에 죽었다고 한다.
결국 이 승부(勝負)는 어느 쪽이 이겼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