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百藥之長 주백약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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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百藥之長 주백약지장[편집]

   술 주      일백 백      약 약      갈 지      길 장  

주백약지장(酒百藥之長) 관련 설명[편집]

술은 마시면 인심을 길러 그 공험이 많으므로 약중에 첫째 간다는 말  

「술은 백약의 장」 우리들 애주가들에게는 실로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출처는 '한서(漢書)'의 「식화지(食貨志)」로서 왕망이 내린 조서 첫머리의 일구 「소금은 식효(食肴)의 장(將)이고, 술은 백약의 장이고…」에서 나왔다.

전한과 후한 사이에 14년간 계속한 신(新)이란 나라가 있다. 이 조서는 신의 황제 왕망이 경제정책의 철저를 기한 것으로서 그 발단은 역시 술과 기이한 인연이었다.

그러나 다소 피비린내가 난다.전한의 원수(元壽) 2년, 애제가 죽자 그 외척 까닭에 조정에서 쫓겨나 있던 왕망이 다시 대사마로 복귀하여 어린 평제를 세웠다.

당시 「백성에게 칠망(七亡)이 있고 일득(一得)도 없다. 백성에게 칠사(七死)가 있고 일생(一生)도 없다」고 할 만큼, 사회는 궁핍해 있었다.

왕망은 이윽고 자기 딸을 평제의 후(後)로 삼았는데, 불로장생의 약주인 초주(木叔酒)를 올려 12세인 평제를 독살시키자 조종하기 쉬운 두 살 밖에 안된 어린 임금을 세우고 스스로가 황제라 칭하니 드디어 야망을 달성, 황제가 된 것이다.

그는 유교의 성인인 주공(周公)을 이상으로 삼아, '주례(周禮)'에 기본을 둔 제도를 그대로 실행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물가통제와 융자를 실시하고 화폐를 주조하고 산림이나 하소(河沼)를 관리하고 또 소금․철․술을 정부 사업으로 했다.

이것을 「五均六幹이라 하고서 감독관을 두었다.그런데 군현의 관리들은 낙양등 대도시의 대상인과 짜고 이 제도를 악용하여 돈벌이를 꾀했기 때문에

군현의 관리와 짜고서 이중장부를 만들고 물건을 빼돌려 백성들은 더욱 괴로왔다.그리하여 왕망은 백성들의 괴로움을 알고

다시 전기한 조서를 내려, 오균육간은 백성들의 소득을 고르게 하며 유무를 통해 백성들의 쓰임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철저를 꾀했다.

하나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더 악화되고 「적미(赤眉)」「녹림(綠林)」의 난이 일어나 마침내 지황(地皇) 4년 유명한 곤양의 싸움에서 실각해 버렸다.

그 때 그는 역시 술만 마시고 「주례」나 공자의 말을 되씹으면서 그 덕택으로 재난을 면하는 기적이 나타나기를 고대했으나 결국은 전신 난도질을 당한 채 죽은 것이다.

「술은 백약의 장」의 출처에 얽힌 이야기는 이상과 같이 그리 듣기에 즐거운 고사는 아니다. 그러나 그 피는 씻기고 망각되어 후세의 애주가들에게는 편리한 말이 된 셈이다.

곁들여서 술은 이명(異名)인 「미록(美祿)」(술은 천하의 미록)의 출처도 같은 '한서'의 식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