投筆從戎 투필종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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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筆從戎 투필종융[편집]

   던질 투      붓 필      좇을 종      병장기 융  

투필종융(投筆從戎) 관련 설명[편집]

시대가 필요로 할 때에는 문필을 버리고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말  

동한(東漢) 초년에 안릉 지방에 한 서생이 있었는데 뒤에 유명한 역사의 인물이 되었다.

그가 바로 서역에서 큰 공을 세워 정원후로 책봉을 받은 반초(班超)다.반초는 한서(漢書)의 저자 반고(班固)의 동생으로 어려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을 읽어 큰 뜻을 간직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가사에 부지런히 종사하면서도 고달프다고 원망 한 마디 없이 지냈고 구변이 유창하여 웅변에 능했고 남을 설득시키는 신력이 있었다.

한나라 명제 영평 5년에 반고가 명을 받들어 도성 낙양에 내려가 교서랑이란 직책을 맡아보게 되어 그도 어머님을 모시고 형을 따라 같이 임지로 내려갔다.

자고이래로 문인의 생활은 모두가 청빈한 것으로 반초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였다.

반고가 박봉 수입이라 일상생활이 두드러지게 곤란하였다. 그러므로 반초가 관청에서 글 베껴 쓰는 일을 맡아 날마다 고생을 하며 박봉으로 형을 도와 생계를 유지했다.

서적을 베껴 쓴다는 일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계적으로 무미 건조했다.

끝없이 책상 머리에 엎드려 있어야 하니 반초로서는 지겹고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본래 원대한 포부를 간직하고 자기의 이상이 있었음인지라 귀중한 세월을 아무 뜻 없이 책 베껴 쓰는 일에 헛되이 보내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반초는 더 견딜 수가 없어 붓을 내어 던지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대장부가 비록 별 뜻을 지니지 않았더라도 부개자(傅介子)나 장건 같이 이역에서 공을 세워 장차 봉후의 지위를 얻어야지, 어찌 오랜 세월을 책상머리에만 앉아 필묵 사이에 파묻혀 있어야 하는가?“이로부터 반초는 문필을 버리고 무예에 종사했다.(棄文就武=)

명제 때 명을 받고 서역으로 출사하여 서역에서 31년간 지내면서 온갖 고초와 괴로움을 극복하고 그의 최대의 지혜와 용감함을 발휘하여 서역의 50여 나라로 하여금 모두 한나라에 예속시켜 공납하도록 했다.

그 뒤 조정에서는 그의 공훈을 보답하여 정원후로 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