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聞不如一見 백문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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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聞不如一見 백문불여일견[편집]

   일백 백      들을 문      아닐 불      같을 여      한 일      볼 견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관련 설명[편집]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봄만 같지 못함  한나라 선제의 신작 원년 서북쪽에 사는 티베트계의 유목민 강이 반란을 일으켰다. 원래 강의 선령이란 한 종족이 황수 북방에서 유목을 하도록 허가되어 있었으나 그들은 넓은 초원을 쫓아 남쪽 기슭으로까지 밀려왔다. 이 때 진압의 책임을 맡고 출동했던 한나라의 장군이 함부로 선영의 주요 인물을 1천여명이나 잡아 죽였기 대문에 그들은 원한을 품고 강을 뙤어 한나라 군사를 공격했다. 그 세력은 놀라울만 해서 한나라 군사는 크게 패하고 뒤쫓겨 왔다. 선제는 당황한 나머지 어사대부 병길을 후장군 조충국에게로 급파해서 이번에는 누구를 토벌군의 지휘관으로 해야 좋겠는가를 물었다. 조충국은 이때 나이 70을 넘은 노인이었다. 상규 출신으로 젊었을 때부터 흉노를 상대로 많은 전투에 참가한 바 있으며 무제 때에는 이사장군 이광리를 따라 원정을 갔던 것이다. 흉노의 군세가 강해서 전군이 포위되고 말았다. 이때 조충국은 불과 100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벽력같이 돌진해서 몸에는 이십여 군데나 상처를 입으면서도 끝까지 적군의 포위망을 뚫고 한나라 군사를 구출해 내었다.무제는 그의 상처를 보고 크게 감격해서 거기 장군으로 임명했다. 그로부터 용장 조충국의 대 흉노 전투로 엮어지는 생애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만큼 70을 넘은 노장이라 하나 선제가 하문을 내리기에는 누구보다도 족한 인물이었다.조충국은 어사대부 병길이 전하는 임금의 물음을 들었을 때 이렇게 대답을 했다.“반란군을 토벌할 지휘관으로는 이 사람을 젖혀두고 달리 없소이다.”이어 선제의 소환으로 중앙에 올라가자 임금은 물었다.“장군이 반란군을 토벌한다고 하면 어떻게 계략을 쓰겠는가? 그리고 병력은 얼마나 가지면 토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늙은 장군은 이렇게 대답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실제로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란 말이올시다. 모름지기 군사나 전투에 관해서는 실제 현장을 보지 않고 먼 데서 계획을 세우기란 어려운 일이니 바라건대 임금께서도 금성군 감숙성 난주 부른으로 가셔서 도면을 펼쳐 놓고 방책을 세웠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이리하여 자기에게 맡겨주면 반드시 목적을 이루고야 말겠노라는 청원을 올려 선제도 대견한 웃음을 띄우고 쾌히 승낙했다.조충국은 그 후 금성으로 가서 그 지방의 정세를 자세히 살핀 다음 드디어 둔전(屯田)이라는 방책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곧 임금에게 자기가 세운 방책을 상주했으며 기병보다 보병 1만 여명만을 풀어서 이들을 각 지방에 골고루 침투케 했다. 둔전이라는 글귀와 같이 군사를 흐트려 농사군으로 가장해서 사실상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이다.1년 동안 조충국 자신도 거기에 머물러 지내면서 표면으로는 농군이 되고 이면으로는 감쪽같이 군사조직을 가지고 작전을 세워 크게 피를 흘리지 않고도 강의 반란을 깨끗이 평정할 수 있었다.그는 과연 일견(一見)을 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