豹死留皮人死留名 표사유피인사유명[편집]
豹 표범 표 死 죽을 사 留 머무를 유 皮 가죽 피 人 사람 인 死 죽을 사 留 머무를 유 名 이름 명
표사유피인사유명(豹死留皮人死留名) 관련 설명[편집]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당의 애제 4년 선무군 절도사 주전충은 황제를 협박하여 위를 양도받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국호를 양이라 칭했다. 그 후 약 반세기는 그야말로 수호지가 말하는 「분분한 오대 난리의 세상」이었다. 군웅은 각지에 웅거하며 서로 싸웠고, 왕조는 눈이 어지럽게 일어났다가는 또 망하고 그리하여 골육상잔은 계속된다. 이것은 그 오대에 살던 사람의 이야기다.양의 용장으로 왕언장이란 자가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주전충의 부하가 되어 주가 각지로 전전할 때에는 언제나 그 곁에 있었다. 전투할 때는 두 자루의 철창을 가지고 간다. 무게는 백 근, 그 하나는 안장에다 걸고 나머지 하나를 휘두르며 적진에 뛰어들면 그 앞을 막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왕철창이라 불렀다.이윽고 주전충은 양의 태조가 되나, 그러나 양의 위령이 미치는 곳은 중원 뿐이었다. 군국은 주위에서 그 틈을 노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산서에 자리잡고 있는 진왕 이존욱의 기세는 강하여, 양군은 자주 하북에서 격파당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난리통에 주전충은 그 아들 우규에게 살해되고 우규도 바로 동생에게 살해되는 내분이 계속된다. 양의 기색은 나날이 나빠져 갔다. 이미 이존욱은 북방에서 황제라 칭하며 국호도 당이라 정하고 그 군대를 점차 남하시키고 있었다. 덕승을 경계로 하여 양군은 공방전을 계속했다.이 때 초토사로 임명된 것이 왕언장이었다. 그는 질풍과 같이 군을 진격시켜 곧 덕승 남안에 있는 남성을 함락시키고, 다시 파죽시제로 양유까지 육박했으나 당의 대군이 도착하여 병을 잃고 퇴각했다. 그는 다시 반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나 불시에 초토사를 파면당하고 말았다. 그는 평소 궁중에 있는 측근을 늘 미워하여, 내가 승리를 하고 돌아가면 그 놈들을 주벌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 시기는 급박했다. 2개월 후 당제가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쇄도해 왔을 때, 왕언장은 다시 기용되었다. 그는 고전을 계속했으나 상처를 입고 포로가 되었다. 당제는 그의 효용을 아껴 귀순을 권했으나 그는,“아침에 양을 섬기다가 저녁에 당을 섬길 수는 없다.” 고 완강하게 거절을 했다. 그리하여 곧 살해되었다. 그 때에 나이 61세, 왕언장이 죽자 양은 곧 멸망하고 말았다.왕언장은 거의 글자를 알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속담을 인용해서 말을 했다. 즐겨 입에 담은 말이 이 「표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의 속담이다. 짐승도 가죽을 남긴다. 사람도 사후 미명(美名)을 남겨야 한다. 분분한 오대 난리 속에서 이것을 마음의 지침으로 삼고 그는 살았던 것이다. 「호사유피……」도 그 뜻은 같다.